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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Sox in MLB/Red Sox

검은 거탑 (by ps)



ps님의 글입니다.
 
 
 
 
 


그래, 장준혁 과장, 당신은 데뷔부터 화려했지. 동기들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과 솜씨로 1등을 도맡아 했었지. 그대는 너무나도 빛났어.



국내 최초로 간, 췌장, 신장 동시 이식을 성공시켰지. 당신의 스피드는 놀라웠어.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 의국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에게 박수를 쳤어. 다음 과장 자리는 당연히 당신의 것이어야 했어.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당신이 어두운 일식집에서 유필상 의협 회장에게 고급 시계를 받으면서 ‘형님’이라고 부르던 목소리를 잊지 못해. 당신의 그 미묘한 목소리는 경계의 어디쯤에서 전혀 당신의 목소리 같지 않게 울려 퍼졌어. 그건 당신이 이 길로 가야 하는 게 맞나 혹은 그렇지 않나 하는 갈등의, 의심의, 혼란의 ‘형님’이었어.



말해봐. 복수를 하고 싶었나? 이주완 과장에게? 당신을 내치고 어디선가 자신의 후배를 내세우려고 한 늙은 여우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거야?



당신은 불륜 관계에 있는 와인바 여사장 희재에게 말했지. 당신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노민국 선생이라고. 그 노민국 선생을 이기고 싶어서 검은 약물에 손을 댄 건가? 당신은 투표에서 그를 이겼잖아. 정치적이든 뭐로든 말이야.



오경환 교수에게 배울 때의 열정과 사명감은 어디로 간 건가? 선배들이 잘 때도 책 한 자 더 파고들던 그 때의 장준혁은 어디로 간 건가?



당신은 오남기 학회장으로 라인을 갈아탔지. 탁월한 선택이었어. 당신 뒤를 봐준 의협 회장이나 부원장의 간섭과 압박으로 약제 하나 당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명인 대학을 뛰쳐나오려는 건 훌륭한 선택이라고 봐. 당신은 송도에 지으려고 하는 미국 메디컬 센터 동북아 허브 병원에서도 과장의 자리에 앉을 거니까 말이야.



그때쯤인 것 같아. 당신의 야망이 당신을 잡아먹어버린 것이, 검은 유혹이 당신을 잡아먹어버린 것이.



그래, 장준혁 과장, 당신은 그렇게 원하던 과장이라는 자리를 얻었고 얼마 후 영광스러운 외과학회장이 될 수도 있었어.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는 그곳으로 말이야.



그러나 당신은 지리멸렬한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되겠지. 메피스토펠레스가 권한 검은 약물을 손댄 파우스트 박사를 보는 것처럼 나는 왠지 서러워. 당신을 통해서 보고자한 나의 소시민적인 야망의 말로가 당신과 닮게 될까봐 왠지 씁쓸해. 그리고 서글퍼.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당신의 의사로서의 열정과 사명감을 믿고 있거든.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고자 하는 그 마음이 아직도 당신의 가슴에 남아있다고 믿고 있거든. 그러니 당신이 가장 추악한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응원할지도 모르겠어. 아니, 동정하고 변호하고 끝내는 울어버릴 것 같아. 당신은 누가 뭐래도 장준혁 과장이니까.

ps 그래, 이 글을 쓰는 나는 그 사람 정도로 해두지. 문상명 선생으로.



B Rossette